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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담담] 목표, 도전, 자립으로 이뤄낸 북한 전문 연구자의 꿈

작성자
관리자
작성자
장수민
작성일
2024-07-02
조회수
154

조수빈: 안녕하세요 통일담담의 아나운서 조수빈 입니다 북한의 광산노동자는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여성공채1호 박사가 되었을까 2부에 걸쳐서 알아보고 있는대요
조현정 박사님 다시한번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조현정: 안녕하세요
조수빈: 그리고 나민희씨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통일 담대한 담화 국책연구기관 탈북민 공채 1호 박사, 두 번재 이야기
조수빈: 아무 기술도 없이 기댈 데 없이 아들 하나 데리고 오신 거잖아요?
조현정: 2003년에 한국에 입국하고 나서 하나원에서 적응 교육을 3개월 동안 받잖아요? 그때 목표를 썼어요 내가 한국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지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는데 보니까 굉장히 목표지향적인 사람이더라고요
조수빈: 맞아요 그러신거 같아요
조현정: 그래서 하나원에서 첫번째 목표가 10년 안에 집을 사자!
나민희: 오~
조수빈: 대한민국사람들도 10년안에 집사기 어렵거든요
조현정: 네 그런데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고 집값이 얼마인지도 몰라요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냥 제 마음 안에서 그렇게 하고 싶은거에요
조수빈: 집을 사야 된다는 걸 아는 것도 신기하네요 중국에서의 생활이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조현정: 중국에서도 그랬고 처음에 97년에 중국에서 돈을 벌어서 북한으로 돌아갔을 때 집을 사고 할머니와 같이 아이하고 살려고 했던 그 마음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목표를 세운 게 10년 안에 집 사는게 목표였어요
조수빈: 집을 사기 위해 어떻게 하셨어요?
조현정: 시간이 돈이니까 새벽부터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죠
조수빈: 해보셨던 일을 나열해 주신다면?
조현정: 신문배달을 가장먼저 시작했어요 새벽에 고깃집에서 일을 해보고 햄버거 집에서도 해보고요 옷가게, 치킨집, 족발집 이렇게 해보니까 한 30가지정도는 되더라고요
조수빈: 집은 사셨나요?
조현정: 7년 만에 집을 샀죠
나민희: 와~
조현정: 물론 지방이고 집값이 1억도 안 했어요 그러니까 가능했어요
조수빈: 대출끼고 샀습니까 현금으로 샀습니까
조현정: 처음에 조끔 대출을꼈다가 1년만에 갚았죠
조수빈: 캬~ 갚으면 안되는데 탈북하시면은 예전에는 정착하시는 분들에게 집을 주고나 그러지 않았어요?

Q.탈북민 지원 혜택은?
조현정: 임대아파트는 급여나 생활 수준이 달라지면 거기서 나와아 돼요. 그 집은 우리 집이 아니에요
조수빈: 아 그런게 있구나
조현정: 임대료를 내고 보증금을 내고 들어가서 사는데 그 집을 공짜로 준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조수빈: 미안해요
조현정: 돈을 내거나 임대료를 내거나 그런거는 다 내고 있지만 주로 어르신들이 많고
조수빈: 주로 탈북자들이 사는것만은 아니고 아니면 섞여 있나요?
조현정: 그렇죠 지역별로 이렇게 영구임대아파트에 몇 명씩 배정받으면 들어가서 사는 거죠. 그리고 수입이 높아지거나 자격조건이 안되면 나와야 해요
조수빈: 민희씨는 한국에와서 집을 사셨..
나민희: 네! 작년이니까 7년만에
조수빈: 남편 분과 함께?
나민희: 네 그런데 저는 대출을 많이.. 그런데 임대주택이라는 든든한 보금자리가 있다보니까 거기서 집문제는 당분간은 걱정을 안해두 되잖아요 거기서 열심히 모아서 가능했던 거죠
조수빈: 오히려 안 사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나봐요
나민희: 그런 분들도 가끔은 계시는데 편법?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뭔가 내 집이 있다는게 한국에서 그래도 든든하게 발을 붙였다는 의미 같아서
조수빈: 그렇게 집을 마련하고 거기서 멈추지 않으셨죠?
조현정: 그렇죠
조수빈: 그 다음 목표는 무엇이었습니까?

Q.내 집 마련 후 다음 목표는?
조현정: 사실 처음에 와서 돈을 열심히 벌어서 부자가 되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새벽 2시~3시 일어나서 밤10시까지 일을하고 거의 2~3시간 자고 일어나서 일했던 것 같아요 낮에 회사출근하고 주말은 주말대로 대형마트에가서 일을하고 그러다보니까 그렇게 한 5년을 열심히 지내다 보니까 달리고 나니까 도대체 부자는 얼마를 가져야 부자이지? 그런질문을 저에게 하게 되어썽요
조수빈: 그 답은?
조현정: 정답이 없는거에요
조수빈: 그렇죠
조현정: 허무한 거예요. 갑자기
조수빈: 저는 지금 더 벌고 하는데
조현정: 그래서 방향을 바꿔야 했었어요
조수빈: 되게 뭉클한 생각이 드는 게 집도 생겼고 아들도 먹이고 입힐 수 있고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만족할 것 같은데 인간이란 존재가 정말 단순하지 않구나
조현정: 한 4년을 일하고 다른 직장에서 이직하면서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동기 중에 공부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일을하면서 공부를 한다고? 그것을 처음 안거죠 그래서 나도 할 수 있느냐?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래서 방통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조수빈: 방통대에 가셨군요
조현정: 그때가 나이가 34살이였어요 40에 무엇을 할꺼냐 할수 있겠냐 다 부정적이였어요
조수빈: 그때 전공이 무엇이셨어요?
조현정: 학부때는 청소년 교육
조수빈: 원래 교육자가 되고 싶으셨다고 집에 있는 아들과 보내는 시간도 부족했을텐데
조현정: 사실 공부를 하면서 아이와 많이 가까워지게 된 거죠 저도 부모이긴하지만 부모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경험도 없고 그리고 저도 부모 교육을 받아본 적 없이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고 하다보니까 굉장히 권위적이고 그 북한에서 어른들이 했던 방식으로만 그냥 아이를 키우는 거예요
조수빈: 석사부터 북한학을 하셨잖아요
조현정: 네
조수빈: 왜 바꾸셨어요?

Q.북한학을 공뷰한 이유는?
조현정: 제가 대학교때 졸업논문을 써야 되는데 탈북청소년이 학교생활을 주제로 잡게 된 거예요 탈북청소년의 학교생활 연구를 하려다보니까 제가 북한에서 아는게 별로 없다라는것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살았던 삶의 경험은 있으나 이거를 북한을 안다 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거예요
조수빈: 한국은 미디어가 있으니까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도 체험할 수 있는데 두 분 같은 경우 만날 일이 없는 사람이잖아요?
조현정: 네 아 그러면은 북한학을 학문으로 공부하는것을 찾아봐야겠다 그래서 검색창에 막 쳐봤어요 탈북대학원생을 석사과정만 지원하는 미국재단의 미국 조지 소로스 재단에서 장학생을 모집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1년에 최대 5명을 모집하는데 제가 3기로 장학생이 됐고 그때 3명이 뽑혔어요 그중에 저도 한명으로 뽑힌거죠
조수빈: 조지소로스 돈 많으신데
조현정: 그쵸 돈을 많이 벌으셔가지고
조수빈: 훌륭한일 많이 하시고
조현정: 좋은일 많이 하시더라고요 조건이 있었어요 일을 안하고 공부하는 대신 전액 장학금에 생활비 보장해준다고 했었어요
조수빈: 나도 하고 싶다
나민희: 지금도 있나요?
조현정: 중단이 되었슨비다
조수빈: 왜 중단되었나요?
조현정: 글세요 돈이 없나봐요
조수빈: 조지 소로스에게 감사와 다시한번 열어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없대... 저도 아이 엄마다 보니까 어려운 환경에서 자주성가한 분을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 원천에는 누가 있을까 저는 양육자라고 생각하거든요 교육학도 하셨지만 외할머니힘이 컸을거 같습니다

Q.조현정 박사의 힘의 원천은?
조현정: 저의 할머니는 저에게 늘 사람은 늘 배워야 한다 그게 몰 배워야하는지는 몰라요 그런데 항상 관념적으로 배워야 한다라는것이 매번들어왔던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MBA공부를하고 있는데
조수빈: 저희 모임하나 만들어요 제가 빈말이 아니고 통일담담 구독자님도 마찬가지이시겠지만 저희가 사실 많이 누리지만 불행하고 힘들고 난 못해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박사님을 뵈니까 인생 롤 모델을 만난거 샆습니다
조현정: 별말씀을
조수빈: 저의 셋이 만나야해요
열심히 사는 여자들의 모임 열여모임
나민희: 북한이였으면 34살에 대학, 그것도 여성분이 상상도 못하거든요
조현정: 그렇죠
조수빈: 북한에서 여성 차별 없다. 인재를 많이 키운다고 광고를 하거든요 사실입니까? 북한에 있었다면 박사가 될수 있었을까요?

Q.북한에서 박사 학위 가능했을까요?
조현정: 불가능했죠 그리고 대학을 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삶에 찌들어 있었겠죠 어떤 하나의 과정을 성취할 때마다 내가 만약 지금 북한에 있었다면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 같아요
조수빈: 민희씨는 있는 집이니까 박사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나민희: 그거는 어려웠을거 같습니다 북한도 박사가 적은 편이에요. 진짜 적은데 현역에서 약 20년 정도 일을 하면 박사학위정도 따도 되지 않겠어요 위에서 오더가 내려와야지 내가 할 수 있는거에요 내가 박사과정을 밟는다고 되는게 아니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여성이 대학에 다니다가 임신하면 퇴학당하거든요 그런것도 있어요 그리고 여자가 대학에 갈 수 있는 나이도 속이고 편법을 쓴다 해도 스무 살까지가 최대한이고
조수빈: 나중에 간다는게 있을 수 없겠네요
나민희: 말도 안되는거죠
조수빈: 대한민국에서는 임신을 장려하는데.. 학위 준비 외에도 최근까지 북한 실상을 알리는 민간연구기관 활동도 하시면서 많은 탈북민을 만나고 있습니다 박사님처럼 되고 싶은 분들도 참 많을 것 같아요 탈북민이 이렇게 우리사회에서 인정받고 정착하기 위해서 어떤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Q.탈북민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필요한 것은?
조현정: 사실 탈북민에 대한 정착 지원 제도가 어느정도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는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저 주어지는거는 없는거 같아요 지원제도라는 것은 우리가 평생 여기서 살아가는동안 전적으로 지원하는것은 어렵다고 저는 보거든요 그래서 어느정도 이 사회에서 발을 딛고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의 지원 정책이 있다면 그 다음터는 자기가 달려야죠 이미 한국사회가 하나의 기계톱니바퀴로 보게되면 다 같은 간격으로 돌아가잖아요 어느날 갑자기 탈북민이 그 사이에 끼어들어왔어요 그런데 우리가 똑같이 보기에 발을 맞추려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잖아요
조수빈: 그렇죠
조현정: 쉼 없이 부딪히고 깨지고 세상 속에 나를 집어넣기 위해서 노력했던거 같아요 누군가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면 억울했을 거에요. 그런데 스스로가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니까 노력했던 것들이 지금이 와서는 자산이 되고 있다는 것을 지난 20년 동안 제 경험을 통해서 증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수빈: 저는 세례받는 기분입니다
조현정: 하하하하
조수빈: 전문 연구자로써 북한사회 실상을 알리는 그런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제가 들었는데 교육학 박사 이시기도 하잖아요 교육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세요?

Q.북한 전문 연구자이자 교육학 박사로 할 일은?
조현정: 우리가 토일이 되면 북한의 사람과 남한의 사람이 같이 살아게 되는 거잖아요
교육이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거든요 그래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우리가 통일이 되더라도 함께 살아기가 힘들다 그래서 교육 과정 개발도 새롭게 해야 되고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요
조수빈: 오늘 조현정 박사님과 함께 얘기 나누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북한에 대한 이야기 일수도 있고 살아가는 용기를 많이 얻어서 할수 있다 앞으로도 더 하실일이 많다 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통일을 위한 미래를 담담하게 준비해 나가는 통일담담, 담대한 담화를 나눠 봤고요 저희 다음 시간에 좀더 감동적이고 멋진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통일 담담

통일 담대한담화
PD 심영규/ 작가 김혜련/ 촬영 최준우 이호진 이희은 / CG 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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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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