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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담담] 국책연구기관 탈북민 공채 1호, 조현정 박사

작성자
관리자
작성자
장수민
작성일
2024-06-25
조회수
377

조수빈: 안녕하세요 통일담담의 아나운서 조수빈입니다. 저희가 오늘도 감동적이고 정말 살아갈 용기를 얻게 하는 그런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북한에 정말 많은 분들이 살고 있지만 광산 노동자 하면 어떨까요? 이분이 한국에 오셔서 국책연구기관에 탈북여성 공채 1호가 되었습니다. 조현정박사님 모셨습니다.
[조현장 박사 통일연구원]
조수빈: 안녕하세요.
조현정: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조수빈: 북한에서 광산노동자셨다고요?
조현정: 네 네
조수빈: 피부가 보니까 꿀피부 이신데
조현정: 아휴 검사합니다.
조수빈: 겉모습을 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건데 하나하나들어보도록 하고요 잊을 만 하면 찾아오는 밝은 분위기의 손님 이시죠 탈북민 여성 대표 유튜버 나민희씨 함게 합니다 어서오시죠
[나민희 탈북민 출신 유튜버]
통일 담대한 담화
[안녕 나의 이웃, 통일부 X SHUN] EP.2 "오늘도 새로운 꿈을 꿔요"
통일부 X SHUN 오늘도 새로운 꿈을 꿔요 -탈북민 조현정 님의 이야기-
어릴 적, 저에게 가족이라곤 외할머니 뿐이었어요.
단란한 가정을 꿈꿨던 저는 가정을 이루고 예쁜 아이를 얻었지만 가정생활은 순탄치 못했어요.
홀로서기를 결심한 저는 돌쟁이 아이를 업고 중국으로 갔지만 몇 달 만에 북송되었어요.
그러나 돌아왔을 때는 이미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였죠..
이대로는 안되겠어! 한구긍로 가자!
한구겡 도착하자마자 소개받은 신문 배달, 마트, 고깃집 등 25개의 아르바이트를 닥치는대로 했습니다.
교사의 꿈... 이룰 수 있을까? 어릴적부터 꿈꾸던 교사의 꿈이 항상 떠올랐지만 당장은 생활을 안정화 시키는데 집중했어요.
그렇게 생계를 위해 힘을 쓰던 중 또 한번 인생에 곡절이 차자왔어요
이대로 무너질 순 없어!
힘겨웠지만 훗날 아들에게 멋진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대신 K대학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오랜 꿈인 교사의 꿈을 이룰 기회란 생각에 바로 입학을 결정했어요!
넌 할 수 있어
학업과정은 너무나 힘들었지만 함께하는 동기들과 남북하나재단의 장학금 덕분에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죠.
*남북하나재단: 북한이탈주민 정착을 지원하는 통일부 산하 공공기관
그렇게 주변의 도움으로 학사과정을 마치고 좋은 환경에서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교육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교육학 박사가 된 그녀의 이야기
통일담대한 담화

조수빈: 먼저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에 공채 입사 하셨고 북한에서는 광산노동자였습니다. 어느 지역이였어요?
조현정: 함격북도 무산이라고 해서 무산광산은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자철광을 생산하는 자철광 생산 기지 입니다.
조수빈: 말투가 너무 대한민국 말투 이신데 [KBS뉴스 앵커 출신 MC도 인정하는 표준어 구사 능력] 나민희 씨보다
나민희: 오신지 꽤 오래되셔가지고
조수빈: 언제 오셨죠?
조현정: 저는 2003년에 왔습니다.
조수빈: 나민희씨는 언제?
나민희: 저는 2015년에 왔습니다.
조수빈: 12년의 차이가 이런 억양의 차이를 만듭니까
두분이 만약 북한에 있었다면 서로 만날일이
나민희: 없죠 사실 잘 모르고 살았을
조수빈: 네 대한민국이 이런 곳입니다 [대한민국은 자유롭게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곳~]
국책 연구 기관인 통일연구원에 공채로 입사를 하셨습니다 특채 아니고 공채 입니다 그 합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어떠셨습니까?

Q.합격 소식을 듣고 소감은?
조현정: 아~ 모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죠 북한을 연구하고 통일정책을 연구하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국책연구기관이다 보니까 누구나 북한연구를 하는 연구자 입장에서는 가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사실 너무 감격했고 그리고 어깨도 무거웠던거 같습니다
조수빈: 어떤 부분에서요?
조현정: 1호라를 타이틀이 사람을 기쁘게도 하지만 책임이 뒤따라야 하니까 책임감 때문에 무거웠습니다.
조수빈: 광산노동자는 북한에서 어떤 지위정도로 볼 수 있을까요?

Q.북한에서 광산노동자의 지위는?
조현정: 일반 노동계급이라고 보면 되고요 그리고 제가 살고 있던 지역에서 가장 큰 기업소서 대부분 그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무산광산에 배치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래서 저도 학교를 졸업하고 무산광산에 자동으로 배치를 받은거죠
[무산광산 함경북도 무산읍과 창렬노동자구 일대에 있는 북한 최대의 철광산]
조수빈: 학교를 어띠가지 다닌 거예요?
조현정: 여기에서 이야기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갈 수 있는 형편이 안돼서 바로 직장에 배치를 해주는 곳으로 가게 된 거죠
조수빈: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조현정: 역사가 나오는데 짧게 말씀을 드리자면 일단 어머님이 여섯 살에 돌아가셨어요 70년대에는 북한에도 결핵이라는 질병이 많아서 어머니도 저를 낳고 보름 만에 개방성 결핵을 진단 받고 전염이 되니까 격리되어서 따로 생활을 하고
조수빈: 태어나자마자 어머니품을 거의
조현정: 그렇죠 보름 만에 엄마하고 헤어지고 외할머니가 온전히 돌봐주시게 된 거죠
그리고 어머니 병이 호전되지 못하고 결국은 여섯살때 돌아가셨어요 외할머니가 저를 쭉 키우셨죠
조수빈: 출신도 안 좋고 부모님도 안계시고 그럼 사는게 어린시절부터 녹록치 않았을거 같습니다.

Q.북한에서의 생활은?
조현정: 어릴때는 우리가 출신 성분이 어떤지를 의식하지 못하고 성장을 하는데 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학교 다닐때 토끼 가죽도 내야하고 파지, 파철 많이 내잖아요
조수빈: 그런거 했어요?
여긴 안했을거 같아요
나민희: 파지, 파철은 해봤는데 토끼 가죽은 평양에서는 구할 수 없으니까
조현정: 8~90년대에는 예전부터 토끼 가죽 구해오기는 꼬마 활동 계획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쿼리큘럼안에 있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해야되는거에요
조수빈: 토끼 가죽은 어디서 구해요?
조현정: 토끼를 길러서 잡아서
조수빈: 어린애들한테 시켜요?
조현정: 그렇죠 그건 소년단 조직 생활을 하는 모든 청소년에게 의무적으로 부과되는 활동이거든요
조수빈: 상대적으로 금수저였던 나민희씨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본인의 학창시절과 비교해본다면 어떻습니까?
여기도 힘들다고 여러번 막 이야기 하시긴했어
나민희: 파지, 파철을 학교에서 많이 내라고 하거든요 매번내라고 해요 그럼 짜증부터 났던거 같거든요 공부를 하는게 아니라 왜 이런걸 시키나 그런 생각을 했었고
조수빈: 소년단 활동 열심히 했나요?
나민희: 저는 크게 뭐 열심히 할 생각을 못했던거 같아요
조현정: 그게 사회적으로 90년대 고난의 행군에서 배급을 정상적으로 공급을 했었어요 고난의 행군 이후에 태어난 세대와 생각의 차이도 있고 시대적으로 상황이 달랐던 부분도 있어서 그 당시에는 특별히 불만을 가지거나 그런분들이 거의 없었던거 같아요
나민희: 저도 세대 차이를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조수빈: 고난의 행군 이전세대 고난의 행군 이후 세대 어떻습니까?
나민희: 그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더 확실히 나타나는데 학교생활은 열심히 하고 모범생은 아이들 사이에서는 약간 아싸 느낌 인거죠 몬가 좀더 반항을 하고
조수빈: 저 에미나이 왜 저래
나민희: 그렇게 해야 몬가 조금 인싸가 되는 그런게 있어가지고 틈만 나면 한국드라마 보려고 하고 모여가지고 한국노래 부르려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조수빈: 그때는 그런거 한국드라마 이런거 없엇죠?
조현정: 아휴 그런거는 생각해볼 수도 없고 예를들어서 학급에서 모범적인 학생을 따라 배워야할 대상이지 아싸 느낌이 아니었던 거죠 오히려 잘 못하는 친구들이 비판 대상이 되고 학급에서 질타의 대상이 되는 거죠
조수빈: 요거 재미있네 그럼 북한에서 아주 굶고 하는 시대의 이야기는 아니거고요
조현정: 어쨌거나 하루세끼 밥을 먹고 먹고 사는게 시장에가서 돈을 벌어서 사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수령에 대한 충성이런것들이 굉장히 똘똘 뭉쳐 있을 시기였었죠
조수빈: 광산가서는 어떤일을 하신거에요? (처음터 궁금했다!)

Q.광산에서 한 일은?
조수빈: 석탄을 캐셨습니까?
조현정: 산에 이제 자철광이 묻혀 있는것을 구멍을 뚫어서 발파를 해가지고 돌을 트럭에 실은 다음 내려 보내서 분쇄를 해서 실제 철과 철이 아닌 것을 분리하는 것까지 하고 그 분리한 진짜 자철광은 제철소로 보내서 그것을 용광로에 넣어가지고 저는 철과 미강을 분리하는 역할을 한거죠
조수빈: 이제 탈북 얘기를 듣겠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분인게 탈북을 했다가 북송을 당했습니다. 다시 탈북했습니다. 이렇게 기구한 인생이 있을까 싶은데 얘기를 해주시겠어요? 처음에 어떻게 탈북을 하게 되신거에요?

Q.처음 탈북을 하게 된 이유는?
조현정: 사실 90년대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그때 직장생활을 막 하고 있었을 때였거든요 배급제가 다 끊기고 먹고 살길이 막막하고 아 이러다가는 할머니나 저나 굶어 죽을수도 있겠다 위기가 왔죠 할머니하고 3개월을 약속했어요 3개월만 벌어서 돌아오겠다고 하고 넘어갔는데 그 길이 마지막이었어요.. 할머니하고 그렇게 넘어와서 3개월 만에 가지 못했어요. 그리고 그 사이에 6개월만에 할머니는 굶어서 돌아가셨어요 북에서
조수빈: 그 훌륭하신 분이
조현정: 북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없어져서 그때 한국행으로 결심하게 된 거죠
조수빈: 아예 탈북해야겠다?
조현정: 공교롭게 그 당시에 황장엽 씨가 97년에 망명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황장엽 조성로동당 중아우이원회 사상비서를 역임하고 주체사랑의 이론 정립]
조수빈: 저 주체사상의 창시자였던
조현정: 라디오에서 기자회견하는 소리가 나왔는데 북한은 현대판 봉건사회다
조수빈: 저는 탈북한 분들 얘기 들을 때마다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느낌인데 이건 어떻게 된건가요?
북송은 왜 당하신건가요?

Q.북송된 이유는?
조현정: 그 당시에는 브로커가 없었어요 지도와 나침반을 사서 그걸로 길을 떠났었어요
조수빈: 이 분의 생존력은..
조현정: 하하하하하 라오스로 먼저 갔다가 한국대사관에서 안 받아줘서 다시 중국으로 왔다가 미얀마 쪽으로 이제 미얀마로 가면 한국대사관에서 받아줄 거다 그래서 다시 나가서
조수빈: 보장도 없었을 텐데
조현정: 그렇죠 미얀마에서 잡혀서 이들이 중국에 넘겼어요 한국사람이다 여권을 잊어버려서 지금 대사관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그걸 안믿는 거에요
조수빈: 당연히 나도 안믿는데 그때는 탈북자가 많지 않았으니까 한국대사관도 매뉴얼이 없었을 거예요
조현정: 없었죠 그래서 다시 중국으로 추방시킨거에요 미얀마에서
조수빈: 아들도 같이 수용소로
조현정: 그렇죠
조수빈: 찢어놓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요
조현정: 중국 쪽에서는 같이 있었는데 북한으로 넘어가서는 아이 수용소로 따로 보내고
조수빈: 어머 못살아
조현정: 애기들 집결소고 들었던 것 가탕요
조수빈: 서너 살쯤?
조현정: 네 그때 네살쯤 되었으니
조수빈: 혹시 엄마 엄마할때잖아요 그렇죠
조현정: 말을 겨우 할 때였는데 아이상태가 거의 죽게 되었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조수빈: 엄마도 없고 갑자기
조현정: 집결소에서 그 당시에 아이의 상황을 얘기하면 이거는 나중에 꼭 책으로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로 뼈가 아플 정도로 진짜 뼈까지 아플정도로 한달사이에
조수빈: 수용소에서 먹이기나 했겠어요
조현정: 먹는거에서 시작해서 그당시 1,2월은 북한이 제일 추울때라서
조수빈: 저 같으면 북한에서 얌전히 살 것 같은데 또 탈북을 하셨던 거죠?
조현정: 네 사실 97년에 중국에 처음 넘어 갔을때 처음 바깥 세상을 구경을 했고 많은것들을 그때 깨우친거 같아요
조수빈: 자유에 대한 본능은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도 크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고 저희가 다 들으면 대하 소설이 나오기 때문에 요약하면 7년 만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아들도 같이?
조현정: 네
조수빈: 너무 다행이다 탈북직후 한국에 도착했을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Q.한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때 기분은?
조현정: 인천공항이라고 딱 창문너머로 보이는데 정말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나민희: 와 드디어
조현정: 그때는 눈물도 안 나더라고요 꿈인가 생시인가? 너무 멍 했던거 같아요
조수빈: 정말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너무 다행이고요 이분이 대한민국으로 넘어옵니다 광산노동자였기 때문에 사실 듣지 않아도 한국에서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짐작이 되는데요 저희가 다음 시간에 그 이야기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박사님의 파란만장한이야기는 다음시간에 계속됩니다
통일 담담

통일 담대한 담화
PD 심영규 / 작가 김혜련 / 촬영 최준우 이호진 이희은 / CG 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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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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