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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담담] 예술을 위해 자유를 찾아 온 탈북화가 오성철

작성자
관리자
작성자
장수민
작성일
2023-12-12
조회수
420

조수빈: 안녕하세요 통일담담의 조수빈입니다.
조지 버나드 쇼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술은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더한다
“예술은 인생에 아름다움을 더한다” (아일랜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
맞습니다. 동물과 인간이 다른 점 중에 하나가 ‘예술을 보면서 내가 인간이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되고 그로 인해 삶의 깊이를 더 불어넣게 되는데요
예술을 위해 목숨을 건 탈북을 감행한 예술가와의 만남
오늘은 예술을 위해서 탈북을 한 분을 만나보기로 하겠습니다.
그전에요 이야기 손님을 소개 하겠습니다.
북한에서온 김연아, 북한에서 온 손연재 북한출신 아이돌 류희진씨 오셨습니다
류희진/ 아티스틱 스위밍 감독
류희진: 반갑습니다
조수빈: 저의 소개멘트 마음에 드셨나요?
류희진: 너무 맘에 들었습니다
류희진: 제가 김연아 선수의 ‘광팬’인데요 나란히 이름이라도 불릴 수 있다는 게 너무 영광이고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의 주인공, 화면으로 만나보시죠

통일 담대한 담화
통일부 남북통합문화센터 강서구 마곡동
탈북화가 오성철의 개인전 <표현의 조건형식> 진행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분단과 그에 따른 남한의 혼돈,남북한 문화의 아름다운 공존을 표현
특히 ‘수저’를 다양하게 변주한 유화, 사진 등 총 16점의 작품이 전시
수저를 통해 작가의 생각과 관념을 표현하는 작품을 꾸준히 제작
이제는 ‘수저 작가’로 불릴 정도로 확고한 작품 세계 구축
오랜만에 선보이는 연작 시리즈와 가로 5m가 되는 대작도 전시
북에서 남으로 환경의 변화 속에 바뀐 작가의 시선을 감상하는 기회
작가에게 예술이란?
예술은 내 삶의 원동력!
오성철 탈북화가
동시에 새로운 삶을 준 은인 같은 존재
통일 담대한 담화

조수빈: 좋은 화가는 ‘자신만의 색깔’과 스토리를 가져야 하는데 이 분이 바로 그런 화가입니다
안녕하세요
오성철: 안녕하세요 오성철/ 탈북화가
조수빈: 이번에 개인전을 여시고 마침 아이의 아빠가 되셨습니다.
개인전과 함께 찾아온 새 생명
축하합니다
조수빈: 요즘 기분 정말 하늘을 나시겠어요?
류희진: 경사에 경사가 겹쳤네요
기쁨만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아빠가 느끼는 중압감이 공존
오성철: 나만을 위해 살던 삶이 아니라 이제는 아들을 위해 살아갈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좀 듭니다
조수빈: 아이는 몇 개월 되었나요?
오성철: 지금 45일째 됐습니다
와, 백일도 안됐네요!
조수빈: 밤에 거의 잠을 못 주무시고 나오셨겠어요
오성철: 네, 육아하면 다 그렇죠
피곤해보여서
조수빈: 저도 엄마가 되다 보니까 더 열심히 살게 되더라고요 이제 예술 이야기를 하나하나 해보죠
예술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건 탈북 감행
조수빈: 이제 하나하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오성철 화가님, 북한에서 예술가의 지위가 어떤지도 잘 모르지만요
할아버지께서 성분이 나쁜 집안 출신이라서
북한에서 성분 나쁜 가정으로 분류
북한에서의 출신성분은?
노골적으로 학교에서부터 출신 성분을 분류하는 북한
북한 내 계급 분류
1. 핵심 계급
- 김일성 동료 등 북한 건설에 공을 세운 사람들
2. 동반자 계급
- 국가 운영을 위해 협력이 필요한 계층
3. 투쟁 계급
- 과거 기업가, 지주 등
출신 성분이 기록된 개인의 공민등록부가 주민의 전 생애를 좌우
경찰이나 보위부에 의해 국가에 대한 개인의 충성심 평가가 지속적으로 서류에 반영
조수빈: 화가님은 어떤 계급이었는데요?
오성철: 저는 투쟁해야 하고 타도해야 하는 그런 성분이 나쁜 계급이었어요 할아버지가 원래 부산 출신이셨고 북한에 땅을 보러 오셨다가 소작농 하시던 분의 딸이 너무 이뻐서 결혼 하고 싶어 하셨는데 할아버지 집안에선 소작농의 딸과 결혼했다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내쫒았어요
결국 북한에 정착해 자녀 다섯을 낳고 살던 조부모
해방 후 소원했던 가족들을 만나러 남한으로 내려간 할아버지
전쟁이 났을 때 내려가셨어요
잠깐 내려갔다가...
잠깐의 헤어짐에서 전쟁으로 인한 영원한 이별이 돼버린...
남은 가족들은 ‘월남자 가족’으로 분류되면서 가혹한 삶이 시작됐다...
전쟁으로 인한 이별의 아픔에 더해진 주홍글씨
“저희 가족은 사회에서 쓰면 안 되는 사람들이다 하고 낙인이 찍힌 거죠”
조수빈: 화가님보다 아버님이 더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아버지의 두 형제들도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 사망
모두가 평등한 공산주의 국가 북한의 실체는 엄격한 신분제를 유지하는 철저한 계급사회
류희진: 절대 아니죠. (뿌리 깊은) 계급사회입니다
조수빈: 그렇다면 오성철 화가님과는 완전히 다른 분!
엘리트 체육인, 좋은 성분을 가졌던 희진씨
그럼에도 오성철 화가님처럼 북한을 탈출!
조수빈: 북한에서 누렸던 것, 북한의 예체능 교육 그런 걸 누린 거잖아요? 어땠습니까?
류희진: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죠 북한에서 태어나 보니 출신 성분이 좋았고 그러다보니 (특권이) 너무 당연하게 생각됐고 그냥 체계적으로 국가에서 짜여진 상류층의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전문 선생님한테 훈련을 받고 국가가 제공하는 편의속에 운동만 하면 됐던 엘리트 ‘류희진’
류희진: 그 외에도 제가 추가로 얻고자 하는 게 있으면 부모님이 열심히 버신 돈으로 사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요 그런 너무 다른 시스템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탈북을 하니까 다 부질 없는 거예요
화가 오상철과 아티스틱 스위밍 국가 대표 류희진
그들이 북한에서 만날 가능성은?...
0%
오상철: 전혀...
류희진: 북한에서 있었다면 마주 칠 일이 없죠
조수빈: 야아... 그렇습니다
조수빈: 힘든 상황에서도 오성철 화가의 아버지께서는 (가르침을 주셨는데요) 사실 어렵게 사셨기 때문에 비관하거나 포기하거나 순응하셨을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열심히 일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새벽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실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하셨고요
힘든 상황에서도 언제나 강조하셨던 아버지의 가르침
“노예처럼 살지 않으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월남자의 자녀라는 이유로 북한에서 ‘노예의 삶’을 살아야만 했던 화가의 아버지
아버지의 가르침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오성철: 북한은 이미 신분제 국가니까 그런 말이 필요 없는 거죠 (그럼에도) 아버지께서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조직생활 참가 안하는 건 크게 상관을 안 하셨어요 선생님 말을 안 듣거나 ‘도덕이 없다’는 욕을 듣고 와도 상관을 안하셨는데요
유독 아들의 성적에 민감하셨던 아버지
“사람은 항상 자기 생각이 있어야 하고 배워야 된다“고 강조하시던 아버지
“배운 만큼 세상이 보이고, 의문이 있으면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실력을 갖춰라”
오성철: (어떤 날은 아버지가) 월급을 타면 제가 뭘 사달라고 부탁드리려고 했어요
헤진 신발을 신고 다니다 조심스레 아버지에게 신발을 부탁했지만
돌아온 아버지의 말은 “월급이 마이너스라 사줄 수 없다”
오성철: 아니 한 달 동안 휴일도 없이 계속 나가서 일을 하셨는데도 월급이 마이너스라니.... (제가 아버지에게) 이 나라는 무상교육, 무상치료 까지
조수빈: 그러면 돈이 나갈 일이 없는데
오성철: 그런게 다 있는데 (마이너스라니) 아버지가 일해서 번 돈은 다 어디 갔냐고 그때는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내 신발을 사주기 싫으셔서 이러시는 건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아들의 불평에 표 하나를 빼곡하게 채운 아버지
오성철: 그러면서 하나씩 설명을 해주시는 거예요 아동보험은 어떻고, 무슨 보험은 어떻고
나름 다 뜯어가는구나
오성철: 그렇게 설명을 해주시는데
애써 번 노동자의 월급을 갖은 명목으로 다 뜯어가 버린 북한
오성철: 그렇게 다 떼고 계산을 해보니까 (월급은 다 사라지고)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 거예요
조수빈: 옛날엔 지주 계급이셨는데 지금의 북한에선 소작농보다도 못한 처지가 되신 거네요
북한 정부에서 어렸을 때부터 강조하는 교육
‘지주의 후손들은 무조건 힘들게 살아야 한다’
복수를 해야 된다?!
류희진: 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가 머슴이었다면 그게 오히려 자랑스러운 거라고?
갑작스런 호구조사 들어갑니다?
류희진: 머슴은 아니셨고 의사셨거든요
출생신분 등의 불가항력적 요소로 사람들의 계급을 결정하는 북한의 모순
특히 지주 등 과거 유산계급에 대한 강한 증오심 표출
조수빈: 6.25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상철 화가님도 엄청 잘 사셨을텐데 그렇게 가문이 몰락한 와중에 공부를 열심히 하셔서 그림을 그리는 직관원.. 그림을 그리는 직업이라고요?
네...
직관원은 어떤 일을 하는 직업?
직관원 북한에서 벽보, 구호, 그림, 사진,도표 따위를 만들거나 그리는 사람
오성철: 남한에서도 있는 직업이었는데 지금은 프린트 기술이 발달해서 영화를 홍보하는 간판도 대형 프린트 물을 이용해서 설치하는데
전기나 인쇄 기술이 부족한 북한
모든 인쇄 작업은 사람의 수작업으로 진행
오성철: 한국에서 60~70년 때 영화관의 영화 포스터들은 손으로 수작업을 해서 붙이잖아요? 그런 형식으로 구호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직관원이라고 하고요
북한의 회사나 기관마다 직관원이 상주
류희진: 맞아요. 북한은 다 손으로 그리잖아요 포스터, 영화광고 이런 것들을 다 손으로 그려요
조수빈: 희진씨가 북한에서 광고 모델이 되면 사진 대신 손으로 다 그린다는 거죠? 아티스틱 스위밍 쇼도 매번 할 때마다 직관원들이 와서 그림을 그려줬어요
조수빈: 희진씨 팬이면 좀 더 예쁘게 그리고 화가님은 어떤 그림을 주로 그리셨어요?
오성철: 저는 군에 나가서 그렸기 때문에 군대 내의 구호나 생활판이나 연구실이나 이런 곳에서 필요한 일을 합니다
조수빈: 직관원이란 직업은 아까 성분이 별로 안 좋은 집안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사람들도 할 수 있나 봐요?
성분이 나쁜 집안 출신도 남자 1명 정도는 특혜(?)를 베푸는 게 관례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일종의 회유책으로 사용
신병 훈련 직후 본대 배치 날 오성철 화가를 찾아온 정치지도원
조수빈: 직관원을 시키려고 온 건가요?
오성철: 선배 직관원이 있는데 1년 동안 (배우고) 그 이후에 직관원을 물려받으라고...
평소 실력을 눈여겨 본 정치지도원의 권유
조수빈: 원래 그림을 잘 그리셨나봐요?
류희진: 재능이 있으신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아버지한테 혼도 났던 소년 성철
조수빈: 매를 맞을 정도였다고요? 공부 안 하고 그림을 그려서요?
오성철: 집에 장판이나 벽지가... 깨끗하면 뭔가가(?) 하고 싶어지잖아요?
세뇌와 억압이 일상인 황무지 같은 북한의 삶
그 속에서도 희망과 재능을 꽃 피우는 사람들은 존재
직관원이 된 후 삶의 변화는?
일반 병사보다는 비교적 편한 보직
정치선전부를 포함한 고위급들과의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은 편
조수빈: 콩고물이 떨어지는
오성철: 아무래도 간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죠
조수빈: 희진씨도 국가대표로 국위를 선양했잖아요?
국가대표 은퇴 후 대우는?
류희진: 저는 대학을 보내주겠다고 운동을 그만두지 말라고 했는데 그만두고 해외 근무를 선택한 경우에요
국가대표가 되면 누리는 특권
- 북한 조선체육대학교에 입학해 향후 코치가 될 수 있는 전문반 입학
류희진: 성적과 관계없이 내가 가고 싶다고 하면 입학이 가능하고요
국가대표가 되면 누리는 특권
- 메달 수상 시 노동당원 가입 가능
류희진: 입당을 시켜주고 국가에서 아파트를 주고 그런 혜택들이 있죠
조수빈: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님이 희진씨의 환경으로 태어났다면 탈북 안하셨을 것 같은데요?
직관원으로 안정된 삶을 살던 오성철 화가
그가 탈북을 결심하게 된 이유, 그리고 탈북 여정은?
다음 통일담담에서 오성철 화가의 탈북스토리는 이어집니다
통일 담대한 담화
PD 심영규 작가 오유경 촬영 최준우 이호진 CG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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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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