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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담담] 탈북 소년, 변호사 되다. 이영현 변호사

작성자
관리자
작성자
장수민
작성일
2023-11-28
조회수
610

조수빈:  안녕하세요 통일담담의 조수빈 아나운서입니다
2022년에 조사를 해봤더니 한국에 탈북민 수가 3만 3천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2022년 기준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민 수는 약 3만3천명!]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왔지만 와서 정말 어려운일들이 많잖아요
[상당 수 탈북민들이 남한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상황]
특히 한국의 법 남한법을 잘 몰라서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요
[특히 한국의 법을 잘 몰라 실질적 피해를 겪는 경우가 많은 편]
그럴 땐 이 분에게 부탁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탈북민으로써는 최초로 한국변호사 자격을 따신 분이시죠 이영현 변호사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탈북민 변호사 1호’!]
이영현: 안녕하세요
이영현 변호사/법무법인 이래
조수빈: 오늘 함께 할 또 다른 이야기 손님요 통일부 청년 기자단 16기 백은규 기자님 나오셨습니다. 반갑습니다
백은규 청년 기자/통일부 청년 기자단 16기
백은규: 안녕하십니까
첫 인사부터 군기(?) 가 확실히 들어간 청년 기자
조수빈: 이영현 변호사님은 첫 인상부터 샤프하시네요
(I’m 변호사)
조수빈: ‘나 변호사야’라고 얼굴에 쓰여있는데 변호사가 되신 지 5년 정도 됐다고 하시던데
이영현: 맞습니다.
최근 근황은?
이영현: 제가 대한변협 인권재단에서 지금 사무총장 직을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 인권, 탈북민 인권 그 외에 다양한 인권문제 해결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그런 일들 때문에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조수빈: 오늘 이 시간엔 이영현 변호사님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볼 예정인데요
특히 법조인으로써 북한에만 존재하는 법률은 어떤것들이 있고 북한법이 어떤면에서 반 인권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탈북민 출신 남한 법조인이 바라보는 북한 법의 실체와 인권 현황!]
조수빈: 오늘의 주제, 화면으로 만나보시죠
통일 담대한 담화

탈북민 최초로 변호사가 된 이영현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남한에 사는 탈북민들에게 법률을 통한 권익 제공
또한 탈북민들의 성공적인 남한 정착 지원과 이를 위한 각종 세미나와 연구 모임 참여
최근에는 북한인권 실태의 고발을 통한 대외적 여론 환기에 나서고 있다
이외에 탈북민들을 위한 법률 아카데미
외부 강연으로 북한의 실상을 널리 고발하고 있는 상황
특히 북한의 반인권적 법 제정으로 유린되는 북한 인권 실태에 집중
현재 김정은은 ‘3대 악법’으로 북한 주민을 통제
최대 악법은 남한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하거나 복제·유포하면 바로 사형에 처하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1조(반동사상문화배격법의 사명)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반동적인 사상문화, 반사회주의 사상
문화의 류입, 류포 행위를 막기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 우리의 사상진지,혁명진지,
계급진지를 강화하는데 이바지한다.
제28조(적대국 사상문화전파죄)
많은 량의 적대국 영화나 록화물, 편집물, 도서류 류입, 류포하였거나
많은 사람에게 류포한 경우 또는 집단적으로 시청, 연람하도록 조직하였거나
조장한 경우에는 무기 로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한다.
과연 북한 출신 변호사가 바라본 북한 법의 현실은?
통일 담대한 담화

조수빈: 정말 심각하네요 자기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봤을 뿐인데 저렇게 큰 처벌을 받습니다
이런상황 어때요?
Q. 북한의 이런 상황을 보면서 느끼는 점?
백은규: 저희 나이 때는 콘텐츠에 한창 빠져 살 때라서(북한의 저런 법이) 정말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수빈: 극악무도한 법,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라는 게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저희가 살펴보기 전에 반인권적인 법입니다만 변호사가 볼 때 어떤 점에서 특히 그런가요?
이영현: 1981년도에 이미 자유권 규약에 가입한 북한 1991년부터는 유엔 회원국으로 활동까지 시작 때문에 자유권 규약이나 거기서 정한 의무들을 이행을 해야 할 이행 당사국입니다
2020년도에 제정된 북한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반동사상문화배격법
- 한류 등 모든 외부문화, 종교,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에 물드는 것을 방지
- 사실상 김정은의 권력 유지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뿌리 뽑기 위해 제정
[특히 대한민국의 K-팝, 드라마 등의 영상을 겨냥]
[북한 청년들은 (의성의태6> 이런 문화를) 절대 접할 수 없게 못을 박은 악법 ]
이영현: 자기가 좋아하는 영상 콘텐츠를 접했다는 이유로 생명권을 박탈당하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반 인권적이고 ‘악법중의 악법이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북한 한정 반동분자들이 함께 만드는 통일담담~
조수빈: 이제 본격적으로 변호사님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탈북자들 중에 사연 없는 이들은 없다
Q. 그렇다면 이영현 변호사의 탈북 스토리는?
이영현: 사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고난의 행군 1996~1999년 사이에 북한에서 발생한 최악의 식량난
이영현: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고 저희 가족들 역시 하루하루 끼니도 때우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근처에 사시던 외삼촌의 권유 “중국에 가서 쌀 한 배낭이라도 가지고 오자”
삼촌의 말 한 마디에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무작정 탈북
조수빈: 그때 당시에 몇 살이셨나요?
이영현: 만으로 열 네 살이었습니다
조수빈: 학교 공부는 안 해도 되는 거예요?
이영현: 그때는 사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 했습니다 하루 종일 산으로 가서 풀을 뜯고 먹을거리를 찾아서 헤매야 했고 바다에 가서는 조를 캔다든지 미역을 캔다든지 해야 해서...
하루의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식량을 찾아 돌아다녀야 했던 생존의 나날들
당연히 누려야 할 교육에 대한 권리마저도 사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영현: 그래서 학교에 가는 게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조수빈: 그럼 열 네 살에 중국에 가 계시다가 한국으로 들어오신 건데...N고생을 굉장히 많이 하셨겠어요
허허허
조수빈: 은규씨는 열 네 살에 뭐했어요?
백은규: 저는 그 때 중2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싶네요 마침 나이가 그 때였기도 했고 아마... 게임이나 하면서 엄마 말 잘 안 듣고
조수빈: 엄마가 밥 차려주면 (혹시 반항?)
백은규: 그래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조수빈: 먹는 건 잘 먹었다는 거죠?
중2 때 보통의 청소년들처럼 자유(?)를 만끽한 백은규 청년 기자
조수빈: 같은 열 네 살이어도 어디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극과 극의 상황이 벌어지다니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탈북을 해서 한국에 왔을 때 나이가...?
이영현: 열 아홉 살이었습니다
Q. 한국에서의 학업 과정은?
이영현: 그렇지는 않고요. 사실 제가 북한에서도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요 중국에 5년 정도 체류를 하면서도 공부를 거의 못 했습니다 [장기간 숨어살며 감시를 피하는 생활로 정상적인 학습이 어려웠던 이 변호사]
이영현: 그래서 대학교를 갈 수 있는 학력도 아니었고 그런 학습 수준도 아니었기 때문에 스무 살 때 고등학교 입학부터 해서
정말 대단
이영현: 저보다 세 살 정도 어린 동생들과 같이
어린 친구들과 공부해서 자존심 상한다 vs 그래도 공부해서 좋다 (공부해서 좋다에 1초 후 동그라미)
이영현: 저는 자존심 같은 건 전혀 없었고요 중국에서는 불법 체류자 신분에 늘 도망 다니는 신세였는데 제가 중국에 있었을 때 노가다를 좀 했었습니다
(비표준어에 민감)
통일담담 바른말 고운말 노가다 (X) 일용직 노동자 (O)
이영현: 어른들을 따라다니면서 육체 노동을 했는데요 언젠가는 조선족 중학교 건물 외벽을 페인트 칠 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마음이 아파...
이영현: 저는 비슷한 또래 나이인데 제 또래 친구들은 안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저는 페인트 칠 하면서 외벽에 밧줄로
얘는 공부하기 싫어서 게임하고 있었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저 친구들처럼 공부하고 싶은데 나에게 기회가 있을까...”
이영현: 마침 한국에 와서 나이는 많지만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에 너무 감사했습니다
만학도로 공부를 시작한 후 변호사로 인생역전에 성공!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
또 시작된 누나의 잔소리ㅋ
백은규: 요즘은 정신 차리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n 십대 때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 해봤어요?
백은규: 전혀 안했습니다
조수빈: 변호사님 이야기를 들은 뒤엔 어떤 생각이 드나요?
백은규: 돌이켜보면 반성을 하게 되는데 (제가 보낸 시간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유를 누리며 소중한 추억(?)을 만든 백은규 청년 기자
조수빈: 전공은 무역쪽인데 법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어요
Q. 변호사님께 꼭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은?
백은규: 법과는 관련이 없고 우선적으로 처음 변호사님을 뵈었을 때 말투가 남한의 서울 말투와 똑같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말투를 바꾸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이영현: 사실 뼛속까지 저의 말투가 바뀐 건 아니고요
조수빈: 그럼 하실 수 있어요? 북한 사투리가 나와요?
조수빈: 술 드시면 나오나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영현: 고향 친구들을 만나서 정말 가까운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가끔 사투리가 툭툭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조수빈: 해보세요, 한 번만
다시 장난기 발동
이영현: 북한 분이 있으면 조금 할 수 있는데
조수빈: 말투 뿐 아니라 외모도 저희보다 더 세련된 것 같아요!!
백은규: 맞습니다
(인정)
조수빈: 그렇게 남한에 와서 정말 감격스럽게 공부를 하게 됐는데 많은 분야 중에서 굳이 변호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나요?
‘북한 인권유린의 직접적인 피해자’라는 각성이 가장 큰 동기유발
심지어 가족, 지인들, 친구들까지 심각한 피해를 당한 상황
“이제 이들 인권을 보호하고 대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대변자의 길’을 내가 걷기 위해서 변호사가 되자고 결심
조수빈: 은규 씨는 변호사 공부에 관심이 있나요?
백은규: 아, 저는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조수빈: 법전 열어본 적 있어요?
백은규: 법전은 제가 사실 따로 공부를 하고 있어서 그래서 요즘은 법을 따로 많이 살펴보고 있는 상황이긴 한데
엄두가 안 난다?!
백은규: 네. 조금 어렵습니다... 많이...
조수빈: 저도 사실 로스쿨 가려고 고민한 적 있었는데 너무 어려운 거예요. 너무 어려운데... 이영현 변호사님은 어떻게 공부를 했을까요?
백은규: 그래서 저도 하나 질문이 있는데 변호사 시험이라는 게 남한 사람들에게도 결코 쉬운 시험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물며 변호사님은 가족들의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시험 준비를 하셨을 텐데
Q.변호사 공부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이영현: 늘 어려웠죠, 뭐
변호사가 되기 전에도 되고 나서도 여전히 힘든 게 사실
이영현: 그렇게 힘들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게 사실 가족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족이 없어서 (힘들었어요)
5회까지 치를 수 있는 변호사 시험 4전5기로 합격한 이영현 변호사
떨어질 때마다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힘들수록 더욱 그리웠던 가족의 따뜻한 사랑
이영현: 그래도 감사하게도 제가 북한을 나온 이후로 중국에서도 저를 돌봐주셨던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을 만났고 그 분의 지지를 지금까지 변호사 생활 하면서 지지를 많이 받았고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원 때까지 제가 만났던 많은 스승님들이 계신데요
남한에서 만나 마음으로 이어진 가족들의 사랑과 지지로 행복을 찾은 이영현 변호사
이영현: 심지어 어떤 교수님은 명절때마다 음식을 바리바리 싸서
(고마우신 분들)
이영현: 제가 공부하는 곳까지 찾아와서 직접 먹여주시고 (위로해주시면서) ‘힘내서 합격해라’고 덕담을 해주셨기 때문에
그 분들의 격려와 응원 덕에 잘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엔 참 좋은 분들이 많아요
상당히 많습니다
조수빈: 지금 4전5기로 변호사에 합격하신 거잖아요?
이영현: 네
조수빈: 그래도 합격하셨을 때 ‘북한의 가족들이 함께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셨을텐데 어떤 소회가 드셨습니까?
합격 후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 ‘어머니’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면 합격통지서와 함께 달려가고 싶었던 아들
그리고 큰 절을 올리면서 감사함을 표하는 아들을 보고 기뻐했을 어머니
그러나 지금까지 어머니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슬픈 현실
이영현: 그런 것들이 굉장히 서글프고 그래서 한편으로는 합격해서 기뻤지만 반대로 슬프기도 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수빈: 그렇죠.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탈북민 1호 변호사, 이영현 변호사와 나눈 솔직한 이야기들
다음 시간엔 남한에서 변호사로 살아가는 이야기,탈북민을 돕는 다양한 활동에 대해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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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텐츠 최종 수정일 :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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