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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담담] 북한인권을 알리고 싶다! 탈북 청년 김일혁의 꿈

작성자
관리자
작성자
장수민
작성일
2023-11-21
조회수
743

조수빈: 안녕하세요! 통일담담 의 조수빈입니다. 유엔 연설로 화제가 된 김일혁씨 이야기 지난시간에 함께 들었잖아요 [유엔 한 가운데서 북한의 인권 유린을 비판한 탈북청년 김일혁!] 정말 마음이
박아람: 가슴으로 울었습니다.
조수빈: 그렇습니다. 오늘 일혁씨를 모시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북한 인권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통일 담대한 담화 북한 인권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 두 번째]
조수빈: 드디어 17살 소년이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얼마나 걸렸어요 오는데까지?
Q.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은 얼마나?
[김일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북한 인권문제 공개회의 시민사회 대표 자격으로 참석]
김일혁: 2개월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조수빈: 정말 오래 걸렸네요 정말 초 긴장 상태로 왔을거 아니에요?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까?
Q. 한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김일혁: 인천공항에 내리거든요 내리면서 드디어 왔다 그 안도감이 내려오는게 느껴지거든요 그때 정말 모든 근심 걱정을 다 내려놓았던거 같아요
조수빈: 한국에서 17살에 들어오니까 학교는 고등학교를 가는 건가요?
김일혁: 네 저는 2012년 1월 한국에 나와서 3월달에 바로 일반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조수빈: 어땠어요? 교우관계 같은거 공부 따라하기 어려웠을거 같거든요
Q.교우관계와 학업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김일혁: 사실 맨처음엔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초반에는 제가 굉장히 북한 사투리가 심해가지고 친구를 사귀는 게 엄청 힘들었어요 처음 한 달간은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외롭고 소외된 기분
조수빈: 북한에서 왔다는 걸 알리고 시작한 거죠?
김일혁: 네
조수빈: 안 알릴 수 없었던 거죠? 북한 사투리도 쓰니까
김일혁: 얘길 안 해도 알겠지만 담임 선생님이 ‘북한에서 왔으니 친구를 잘 챙겨라’하고 말씀하셔서 친구들이 다 알게 됐고요 그런데 친구들이 별로 관심이 없더라고요
ㅋㅋㅋㅋ
조수빈: 친구들은 잘 해줬어요? 아니면..
김일혁: 제가 다가가질 않으니까 친구들도 다가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 느낌에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3년 동안 혼자서 지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내성적인 성격을 완전히 바꾸고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이 되기로 결심 주변 친구들을 살펴봐서 괜찮은 친구가 있는지 찾아봤거든요 그러다가 몇 명을 제가 발견 했어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밥 먹으러 갈 때 무작정 따라갔었거든요 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무조건 옆으로 갔더니 처음엔 ‘얘 뭐지?’ 이런 시선으로 보다가 1주일이 지나니까 점차 그 친구들과 친해지게 되어 그 후부터는 잘 적응하게 됐던 것 같아요
조수빈: 일혁씨가 워낙 미소가 매력적 이어가지고 씩 웃어주기만 하면 사람들이 모두 친구가 되고 싶어했을 것 같아요
김일혁: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솔직 담백
미소만큼 돋보이는 솔직함
Q. 학창시절 느낀 어려움은?
김일혁: 몇명의 친구들은 저를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차가운 시선을 보냈던 일부 친구들 심할 때는 폭언과 욕까지들어야 했던 일혁씨 친구들의 부당한 대우에도 졸업만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던 시절
박아람: 저는 일반고를 신청하신 계기가 궁금하거든요?
조수빈: 일반고 아닌데도 있어요?
박아람: 대부분 이탈주민 청소년들만 다니는 학교가 있는데
탈북청소년들은 행여 발생할 갈등을 막기 위해 자신들만 다니는 대안학교를 많이 선택
김일혁: 맞습니다. 원래 대안학교를 가면 굉장히 편하게 졸업할 수 있거든요 굳이 일반고를 선택했던 이유는? 최대한 빨리 이 사회에 적응하고 싶다!
조수빈: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 싶다?!
김일혁: 이미 하나원 교육을 받을 때부터 일반 고등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심 그때 선생님이 저한테 말씀 하신 게 ‘일반 고등학교에 가면 굉장히 힘들 거다’라는 충고였거든요. 하지만 저는 그때도 ‘빨리 적응을 하고 싶다’고 하면서 일반 고등학교를 선택했습니다
Q.학업을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았을텐데?
김일혁: 다 어렵죠
조수빈: 북한에서 공부를 잘 했어요?
김일혁: 잘 하진 못했고요. 영어를 조금 공부하려고 했었는데 (잘 안됐죠) 북한에서 공부를 한다 해도 학습의 질도 낮고, 공부에 집중할 시간도 부족한 편 1학년 1학기 때 시험을 봐야 하잖아요?
조수빈: 알아야 보지
김일혁: 시험은 물론이고, 답을 작성할 OMR 카드도 생소했던 상황 전교생이 342명 정도 됐었거든요? 제가 342등이었습니다. 모든 과목 다 안 봐도 이해가 될 것 같아요
조수빈: 북한에서는 공부를 한다 하더라도 김씨 일가의 역사를 외우는 것도 많이 하고
김일혁: 그렇죠
조수빈: 한국의 공부랑 완전히 달랐을 것 같거든요
김일혁: 많이 다르죠 북한에서 공부하는 주요 과목 중 40%가 김씨 가족과 관련
조수빈: 그런 걸 공부하다가 갑자기 미적분이 들어오고, 영어를 공부하고 멘붕이 왔을텐데요
조수빈: 지금 통일담담을 많은 분들이 보시거든요 탈북 후 일혁씨와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탈북 청소년들 그들에게 전하는 형의 꿀팁이 있다면?
김일혁: 저는 사실 고등학교 때 그랬거든요 ‘그냥 버티자’ 이거 하나만 가지고 고교 시절을 참고 졸업을 했기 때문에 탈북민 선배의 조언 시간은 언제나 흘러가기 마련 참고 버티면 결국엔 좋은 세월(=졸업)이 온다
조수빈: 졸업할 때는 꼴찌 안했죠?
김일혁: 졸업할 때는 굉장히 등급이 많이 올라간 상태였어요
오호~~~~~~
김일혁: 2학년 1학기부터 급상승하기 시작한 학교 성적 졸업할 때는 등급과 성적이 충분히 올라서 무난히 대학에 합격~
조수빈: 북한에서도 공부를 잘 못하셨답니다
하하하하~
북한에서의 성적이 남한에서의 성적을 좌우하진 않는다!
조수빈: 대학교에 들어가 열심히 생활하던 일혁씨에게 꿈처럼 주어진 유엔 연설 기회
일혁씨 만큼이나 기뻐하셨을 부모님
Q. 유엔 연설을 하게 됐다고 했을 때 가족들 반응은?
김일혁: 처음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놀라신 부모님 “제일 먼저 부모님께선 ‘괜찮냐’고 저한테 물어보셨거든요”
괜히 대중 앞에서 연설했다가 해코지라도 당하지 않을까걱정부터 하셨던 부모님
걱정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대견함을 표현하셨던 부모님
조수빈: 자랑스러워 하셨을 것 같아요 얼마나 자랑스러우셨을까요?
박아람: 그러게요, 그리고 유엔 연설을 계기로 꿈이 생기셨을 것 같아요 어떤 목표라든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조수빈: 어때요, 연설을 마치고 나니 새로운 꿈이 생겼나요?
김일혁: 사실 전 이미 꿈을 가지고 있던 상태라서 제 꿈이 좀 더 확고해졌다는 생각은 있어요
Q. 지금 가지고 있는 꿈을 소개한다면?
김일혁: 약소 국가의 개발을 돕고 통일 후 북한 지원과 발전을 돕는 것이 탈북청년 김일혁의 꿈
꿈을 위해 국제개발협력 공부를 위한 유학 준비 중 유엔 연설이 꿈을 더 구체화 시키는 촉매제 역할 원래 제가 대학원을 가야할지 아니면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할지 굉장히 고민이 많았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유엔 회의에 참여하고 나서 바로 그냥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조수빈: 아버님이 북한에서도 평양이 아니라 지방의... 어떻게 보면... 일혁씨는 평범하다고 표현했지만 힘이 없는 노동자 계급이었는데
김일혁: 맞습니다
조수빈: 목숨을 걸고 남한에 왔더니 우리 아들이 이렇게 유엔 연설까지 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걸 보는 게 부모의 입장에선 정말 감동할 것 같은 상황이에요
김일혁: 사실 저희 할머니가 더... 난리가 나셨거든요
조수빈: 상상도 못하는 장면이었을 것 같아요
김일혁: 할머니가 항상 절 보실 때마다 ‘너무 대견하다’고 말씀하시고
조수빈: 저는 되게 가슴이 뭉클해지는 게 부모로서 용기를 갖고 탈북을 실행하시니까 자식에 이르러선 (부모님과는) 다른 꿈을 꿀 수 있었다는 게 조수빈: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유엔 연설 성공적으로 종료!
연설의 마지막까지 한국어로 준엄하게 북한을 비판한 일혁 씨
조수빈: 어떤 생각으로 마무리를 그렇게 지은건가요?
이념은 달라도 한글을 공용으로 삼고 있는 남과 북
북한 정부가 본다는 가정 하에 북한 정부를 직접 비판하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일혁씨
동시에 북한 주민이 본다면 자신의 이야기를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한국어로 연설
김일혁: 그리고 유엔이라는 곳 자체가 사실 한국어는 공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어를 사용할 수 없는 곳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동의를 구하고 한국어를 사용함으로써 그들이 다시 한번 이 상황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한국어를 사용하자’라는 마음이 컸었습니다
한국어로 북한의 인권을 소리쳐 외친 누군가를 기억해주길 바랐던 일혁씨
조수빈: 아람씨는 (일혁씨의 연설을 듣고)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았을 것 같아요
박아람: 아무래도 북한 인권 이슈라는 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보니까 북한 인권 이야기가 먼 나라 이야기 같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한 번씩 북한이탈주민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좀 더 북한 인권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 많은 북한 이탈 청년들이 남한 청년들과의 접점을 만들면서
조수빈: 꿈을 나누고 (그런다면) 탈북민의 이야기를 좀 나누면서 저희도 노력을 해야겠지만 일혁 씨가 고등핚에서 먼저 다가갔던 것처럼 탈북 청년분들도 먼저 다가와 준다면
박아람: 저희도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에 (북한 이탈 청년들이) 많은 접점을 만들도록 노력을 해주시면 저희도 북한 인권 나아가 통일 이슈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수빈: 지금은 제가 양쪽에 두 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만약 통일이 된다면 이 두분이 아주 거물이 되어 있을 것 같아요
통일의 미래를 책임질 든든한 남녀북남(南女北男)
조수빈: 일혁씨! 언젠가는 통일이 되겠죠?
김일혁: 통일이 됐으면 좋겠네요
일혁씨가 생각하는 통일의 모습은?
김일혁: 제가 생각하는 통일의 모습은요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편견과 갈등이 없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수빈: 그게 가능할까요?
통일의 형태는 내가 기대하는 만큼 변한다
통일이라는 먼 미래를 봤을 때 비관적인 관점은 한반도에 손해
문제를 직시하고 과제를 풀어나가는 자세
이런 자세가 통일을 앞당기는데 더 중요
분단된 상황으로 또 다른 반세기를 보낸다? 남북 모두에게 손해!
이런 자세가 통일을 한당기는데 더 중요
2회에 걸쳐 나눠본 탈북 청년 김일혁씨의 이야기
비참한 북한의 인권 현실을 되짚어보고 우리의 할 일을 고민해봤던 시간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통일의 그날 까지 함께 할 우리의 이야기
통일담담
다음 이 시간에 다시 만나요~
PD 심영규 작가 오유경 촬영 최준우 이호진 정민영 CG 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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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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