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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속에 피어난 기적, 피난시절 천막교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자
장수민
작성일
2023-08-02
조회수
2474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뜨거운 학구열!
[전쟁에도 멈추지 않는 뜨거운 학구열 70년 전의 학교 이야기!]
70여 년 전의 학교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고난 속에 피어난 기적 피난시절 천막교실]
서대문 독립공원이 내려다보이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서울시 서대문구]
6.25전쟁과 7.27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아 특별한 전시가 마련됐습니다.
한은정 서울중부교육지원청 기록연구사
전쟁이라는 굉장히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살아간 그런 평범한 국민들의 힘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시 중부교육지원청은 서울시 종로구와 중구,용산구에 소재하는 학교들을 관할하는데요,
서울시 지도
- 종로구, 중구, 용산구
이 지역에는 개교한 지 100년이 넘는 학교들이 30여개가 넘습니다.
이들 학교 서고에서 찾아낸 자료와 졸업생들의 기증품으로 전쟁 기간 동안 학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유물 90여 점이 모였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학교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유물 90여 점]
1962년 / 양정중·고등학교
양정중·고등학교 피난학교 교무일지
학사 일정이 빼곡하게 정리된 교무일지.
1952년 9월 20일부터 1953년 3월 31일까지 수업 상황과 출결석, 학생들의 입학과 퇴학관련 내용등 학교 운영 상황이 자세하게 기록됐습니다.
전쟁이 발발하고 이틀 후인 6월 27일, 서울시 교무국은 모든 학교에 무기 휴교를 지시합니다.
1950년 6월 27일 서울시 교무국에서 내려온 무기 휴교 지시
1.4후퇴 이후 남쪽으로 피난민들이 내려오자 학교의 중요 서류들을 지고 피난을 오는 선생님들이 늘어났습니다.
[1951년 1월 4일 1.4후퇴]
1951년 5월, 가능한 지역에서는 학교 수업을 재개하라는 특별 조치가 공포됩니다.
[1951년 5월 4일 ‘전시하 교육특별 조치 요강’공포]

# 경기고 졸업생 이규항
문교부에서 지원을 해가지고 학교들이 다시 피난 학교 문을 열게 된 거예요.
구덕산 기슭에 피난 학교 천막을 치고 그리고 그 천막교실에서 공부를 하니까
‘경기중학교 학생들은 전부 모여라’이렇게 계속 방송도 나오고 신문에도 나오고
메가폰 가지고 동네마다 다니면서 학교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 가보니까 텐트가 열다섯 개쯤 쳐있더라구요. 미국 사람들 군용 텐트입니다. 밭에 이제 텐트를 쳐놓고 그 안에 조그마한 칠판을 걸어놓고 매일 구덕산 기슭의 천막 교실을 가는데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규향/경기고 졸업생
문교부(현재의 교육부)에서 지원을 해가지고 학교들이 다시 피난 학교 문을 열게 된 거예요
구덕산 기슭에 피난 학교 천막을 치고 그리고 천막교실에서 공부를 하니까 경기중학교 학생들은 전부 모여라 이렇게 계속 방송도 나오고 신문에도 나오고 메가폰 가지고 동네마다 다니면서 학교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 가보니까 텐트가 열 다섯 개쯤 쳐있더라고요 미국 사람들 군용 텐트입니다
밭에 이제 텐트를 쳐 놓고 그 안에 조그마한 칠판을 걸어놓고 매일 구덕산 기슭의 천막 교실을 가는데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하는 거에요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했고 교과서도 만들어서 써야했지만 수학여행을 떠나 친구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6.25 전시교과서]
졸업생들은 축하기념 꽃다발을 대신해 들꽃을 한아름 안고 졸업사진을 찍었습니다.
[추억 가득한 수학여행과 학사 일정에 맞춰 진행된 졸업식]
졸업앨범에 남겨진 교훈을 보면 이 시기에 전쟁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53년/ 봉래초등학교 거제서울피난초등학교 졸업앨범]
문교부가 발급한 전시학생증 학생들은 이 학생증을 소지하고 다니면서 징집이 유보됐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문교부가 발급한 전시학생증 이 학생증으로 징집 유보를 증명]
학생증이 없는 15살에서 18살의 소년들은 총 쏘는 법만 겨우 익힌 채 학도의용군으로 전선에 투입됐습니다.
[15~18세 소년들 학도의용군으로 전선에 참전]
# 박경선/ 용산고등학교 4회 졸업생, 학도의용군으로 참전
나이가 17살이었는데 겁났죠. 우리가 고1이었었는데 (학도의용군 지원한 학생들이)
고2, 고3 그런 사람들이 좀 많았죠. 우리는 나이가 어리니까 좀 적었고 중학교 2학년짜리도 있었어요. 우리 그때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명예 졸업장이라 그래가지고 (용산고에서) 명예졸업장만 줘서 받았어요.
전쟁 후, 서울은 잿더미가 됐습니다.
[1953년/ 숭의여자중-고등학교 남산 천막 교사시설 사용하던 종]
간신히 화재를 면한 학교 건물들은 군 시설로 사용되기도 했는데요.
[1953년 숭의여자중-고등학교 남산 천막교사 시절 사용하던 전화기와 타자기]
[1950년/ 서울재동초등학교 36육군병원 제2병동으로 사용한 재동초에 남아있던 철모]
김소연 / 봉래초등학교 주무관
아무래도 전시 상황이다 보니까 더욱더 이제 개인의 능력을 더 개발하고 또 그런 게 국가의 국력에 보탬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해서 여러 개인으로서도 또 하나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또 국가의 보탬이 되고자 더욱 교육에 힘을 쏟지 않았나 싶습니다.
연필 대신 총을 든 작은 영웅들.
[펜 대신 총을 든 작은 영웅들]
폐허 속에서도 계속됐던 배움의 열정..
전시 <피난시절 천막교실>이었습니다.
[전쟁의 고난속에서도 배움의 기적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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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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