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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로그인] 전쟁이 데리고 간 아버지_6.25전쟁 납북자가족 이태영 님

작성자
관리자
작성자
장수민
작성일
2023-06-21
조회수
1164

사람을 통해 통일을 보는 시간 [통일로그인]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
전쟁으로 헤어진 가족
납북자라 불렸던 사람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합니다.
전쟁으로 많은 가족들이 헤어졌는데요.
그 중 납북자 그리고, 납북자 가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쟁이 데리고 간 아버지 - 6.25전쟁 납북자가족 이태영 님

통일로그인
저는 6.25전시 납북자 이길용 기자의 아들 이태영입니다.
이태영 6.25전시 납북자가족 이길용 기자의 아들 아버지께서 기자 생활을 완성을 못 하셨기 때문에 그 뒤를 제가 이어야겠다는 사명감에체육기자로서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독일에서 전해진 기쁜 소식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수상 손 선수의 가슴에 있던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한 이길용 기자
회사 내에서 승인을 받지 않은 채로 개인적으로 조사부 기자, 또 재판부 기자, 사진부 기자 기자들끼리 동맹을 해서 신문에 나가는 일장기를 지우거나 삭제하거나 여러 가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4월 25일 신문에 대대적인 일장기 말소 일제의 강압을 이기면서 항거하셨고 항일 투쟁으로 네 차례 옥고를 치르셨습니다
전운을 감지한 38선 르포
일장기말소사건으로 무기정간할 당시에 이길용 기자는 일체의 사회 활동을 못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이 되자마자 다시 신문사에 복직을 하셨습니다
특파원 신분으로 38선 이북, 이남인 해주, 개성 일대의 활동 상황, 미군과 소련군의 주둔 상황 이런 것들을 보도하기 시작해서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해주는 소래포에서 바로 바라보인다.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그 벌판에 소련 전투기 상당수가 정렬해 있다.
그 뒤로 제련공장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른다.
마치 전쟁의 전주곡과도 같은 험악한 분위기다.
- 이길용 기자 38선 르포 「단장의 38선, 비애의 교향곡」

1950년, 소년의 여름
두 말 할 것 없이 6월이면 6.25를 떠올리게 되고
6.25의 비참한 현실, 비극 현장, 사건들 이런것들을 머리에 떠올리게 됩니다.
6.25전쟁
비참한 현실
비극의 현장, 사건

9살 소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
성북동 뒷산으로 해서 집으로 국군들이 밀려왔습니다
말하자면 패잔병이죠
국군들이 밀려와서 옷을 바꿔 입게 해달라고 국군복을 민간복으로 바꿔 입고 그 사람들은 한강변으로 도망쳐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쟁이 터진 것을 알았고 혜화동 로타리의 언덕 위에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그 처참한 현장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민족의 비극이로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북으로 끌려간 사람들

처음에 북한군은 서울에 들어오자마자 정치동맹이니 이런 것들을 만들어 가면서 사람들을 회유하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응하지 않자 작전을 펴서 그다부터는 사람들을 끌고 가기 시작 했습니다
동료 언론인들이 아버지에게 피하라고, 도망치라고 여러 차례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민족 앞에 죄를 진 것이 무엇이냐 라며 끝까지 저항하셨습니다
항일 투쟁을 하셨지만 남북관계에서는 특별하게 하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도가길 거부를 하셨는데
결국, 7월 17일 정치 보위부원에게 끌려가시게 되고

다시 서대문 형무소로 끌려가셨는데 그때 끌려간 언론인들의 전언에 의하면 개성까지 끌고 갔다는 말도 있고,
평양까지 갔다는 말도 있고 아마도 짐작하건데 평양 근처에서나 개성 근처에서 고문 끝에 돌아가신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북한은 6.25전쟁 중 정치적 목적으로 유력인사를 납치하는 한편 부역동원, 의용군을 위해 남한에 거주하고 있던 우리 국민을 강제로 납치해 갔다 이들을 ‘전시납북자’라 부른다

사라진 사람들, 납북자

종전이 된 뒤에 국제기자연맹을 통해서도 호소를 했고, UN과 여러 경로를 통해서 호소를 했는데 “그런 사람은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의 냉담한 대답뿐
사진제공: 6.25납북자 가족협의회
남북 스포츠 교류가 시작되면서 한 번은 손기정 선생이 앞장서서 북한 기자들을 만나 “납북자들을 어떻게 하셨느냐”라고 물었으나 “그런 사람들은 모른다” 라고 하며
끝내 밝혀지지 않은 납북 인사들의 행방

그리운 나의 아버지

아버님은 오로지 신문밖에 모르셨습니다. 그리고 출장다니시면서 곳곳에 뉴스를 전하시고 가정 일은 집에 맡겨 놓으셨고 저도 뵙기가 어려웠습니다. 가끔 어쩌다 동아일보를 찾아가서 점심사달라고 졸라서 식당에서 점심 사먹던 일, 또는 화신 백화점 엘리베이터 처음 타보던 일, 그런 일 몇가지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고 아버님에 대한 실체를 실감하짐 못했었는데 떠나시고 나니까 마음이 텅 비었고 아버님이 만드신 여러 가지 책들, 글들 이런걸 볼 때마다 슬퍼지는 어쩔수가 없는 현실이겠죠.

신문밖에 모르시던 아버지

출장 다니면서 곳곳에 뉴스를 전하시고 가정 일은 집안에 맡겨 놓으셨고 저도 아버지 뵙기가 어려웠습니다
가끔 신문사를 찾아가서 점심 사달라고 조르면 근처 식당에서 같이 점심 사먹던 일, 백화점 엘리베이터를 처음 타보던 일 등
몇가지만 머리에 떠오르고 아버지에 대한 실체를 실감하지 못했었는데 떠나시고 나니 마음이 텅 비었고

“아버지께서 만드신 여러 가지 책들, 글들을 볼 때마다 더욱 슬퍼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현실이죠“

정부는 2010년 제정된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 회복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시 납북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였고, 2017년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을 설립해 전시 납북의 아픔을 국민과 함께 나누고 납북자들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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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이은지 작가 김재순 촬영 최준우 CG 전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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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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